[ 아시아경제 ] 건설 현장에서 안전 수칙만 제대로 지켜도 예방 가능성이 높아 '후진국형 사고'로 불리는 추락사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4위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대표와 7위 포스코이앤씨 정희민 대표는 잇따른 추락사로 인해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각각 내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참사가 계속 발생하자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추락사고 예방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으며 정부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23일 국토안전관리원의 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 현장 사고사망자 38명 중 19명(50%)이 '떨어짐', 즉 추락사로 사망했다. 다른 사고 유형보다 월등히 높은 숫자다. 추락과 함께 건설 현장 중대 재해의 3대 사고 유형으로 꼽히는 '물체에 맞음'으로 인한 사망은 6명(16%), '깔림'은 5명(13%)이었다. 이 기간 발생한 대표적인 추락사고가 4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2월 경기 안성의 세종포천고속도로 공사 교량 붕괴 사고다.
매년 추락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건설 현장 사망자 중 추락사고 비중은 2022년 54.6%, 2023년 52%, 지난해 51.2% 등 매년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추락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 대해 "대부분 작업자의 단순 과실"이라며 "개별 작업자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설사가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결론도 내렸다. 그러나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부실한 현장이 계속 나타나면서 추락사고 역시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추락사고가 잇따르자 건설사들은 자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추락사고 예방 캠페인'을 통해 300여 개 경고 표지판과 안전조끼를 지급했다. 숏폼 교육 영상과 모바일 점검 앱을 통해 작업 전 안전관리도 체계화하고 있다. DL건설은 모든 현장에 '위험공종 안전 실명제'를 도입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정기적으로 현장을 직접 점검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근로자 생체 신호 기반의 스마트 안전 장비를 현장에 적용하고, 다국적 인력 대상 시각화된 안전 표지판을 도입하는 등 체감형 안전대책을 확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제도를 재추진하고 있다. 사망자 수와 공사명, 시공 사명까지 모두 포함된다. 또한 '건설 현장 추락사고 예방 종합대책'을 통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설계단계부터의 안전성 검토 의무화, 공사장 안전 실명제, 소규모 현장의 관리계획 수립 의무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추락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현장은 고용노동부 '중점관리 현장'으로 지정돼 특별 감독을 받게 된다. 일각에서는 건설사가 5명 이상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를 내면 등록을 말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단속과 처벌 중심의 행정보다 설계 단계부터의 안전 확보와 현장 근로자에 대한 꾸준한 교육, 경영진의 관심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명기 한국건설안전학회 부회장(서울디지털대 교수)은 "안전을 위한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전보다 원가절감이 먼저고 '예전에도 이렇게 했다'는 식의 관행이 계속된다면 사고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나 보여주기식 점검이 아니라 안전에 꼭 필요한 법령을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 아닌 '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으로 바꾸는 것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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