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유심 대란'에 이어 '위약금 면제'가 SK텔레콤(SKT) 해킹사태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0일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서 "SKT 이용을 중단하고 싶지만 위약금 부담 때문에 다른 통신사로 바꾸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위약금을 면제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 오는 8일 청문회 증인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불렀다.
위약금 면제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SKT가 고객의 위약금을 모두 감면할 정도로 법률적 책임이 있는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는지를 판단하는 게 관건이다. '회사의 귀책사유로 해지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한다'는 SKT의 약관 조항이 해당 근거다.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한 3명의 변호사 의견을 종합하면 이번 해킹이 'SKT가 보안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당한 천재지변인가' '보안조치 미비와 안일한 유심 대응으로 피해를 키운 인재(人災)인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명현준 법률사무소 명량 대표변호사는 "계약을 해지할 때 '귀책사유'는 신뢰관계를 파괴해 계약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유를 의미한다"며 "개인정보 유출 자체만으로도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파탄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SKT가 보안조치를 포함해 지켜야 할 모든 조치를 했는데도 자연재해처럼 해킹이 발생했다면 전적인 귀책사유로 보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이를 따지는 게 법률적인 쟁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도 "보안 투자가 충분했고 기술적인 한계를 넘는 해킹 공격이었다면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SKT 귀책사유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유심 조치가 충분했는지도 귀책사유 여부를 결정할 요인으로 꼽았다. 전상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고객이 유심을 바꾸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만약 유심보호서비스마저 안전하지 않다고 밝혀져 고객이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면 SKT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런 경우 법적으로 SKT 측 귀책사유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검토 끝에 귀책사유가 SKT에 있다고 해도 위약금 전액 면제가 곧장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명 변호사는 "법률 검토 결과는 '귀책 여부'까지만 판단하며 실제 면제 범위나 기준은 SKT의 내부 정책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에서 결정될 문제"라고 했다. 예를 들어 SKT가 위약금 면제를 일부 감면이나 차등 적용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킹 사태를 조사하는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위약금 면제 논란의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법무법인 3곳에 위약금 면제 관련 자문을 의뢰해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고위관계자는 "SKT 이용약관 43조에 명시된 위약금 면제 조항 4호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해지할 경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법률검토를 요청했다"고 했다.
해킹 사태 이후 SKT 가입자 이탈 규모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4월 SKT에서 다른 통신사로 이동한 고객은 23만7000여명으로 지난달과 비교해 약 87% 늘어났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유심 무상 교체 시행 이후 SK텔레콤 가입자 이탈이 하루 수만 명대 규모로 평시보다 수백 배 급증한 상황"이라며 "신규 가입을 받지 못하고, 위약금 면제까지 이뤄지면 SKT의 1위 사업자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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