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 지난 2월 인공지능(AI)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국가 대표를 뽑아 챗GPT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LLM(거대언어모델)을 만들겠다"며 일명 '월드 베스트 LLM 선발'을 내세웠다. "국회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매입 비용이 반영된 추가경정예산만 통과되면 당장 국가 대표 선발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던 사안이기도 하다. 5월 국회에서 추경안 처리를 앞두고 AI 업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정책이다.
예산만 해결되면 순조로울 거라 예상했던 '월드 베스트 LLM' 정책은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가 됐다. 예정처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LLM 개발의 핵심인 GPU 임차 기간이 정부 계획보다 크게 짧다고 밝힌 것이다.
예정처는 보고서에서 '정부가 1586억원을 투입해 AI 국가 대표로 선발된 기업들이 GPU 2000장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GPU를 가진 기업들을 수소문해 11개월 동안 임차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7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 또 정부가 임차해주겠다는 엔비디아 최신 GPU인 B200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국내에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AI 국가대표 기업이 실제로 GPU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정부가 말한 11개월보다 4개월이나 짧은 7개월밖에 안 되고, 고성능 GPU 모델도 정말 사용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게 핵심이다. 보고서는 '정부가 GPU를 구해 쓰려면 운영기관을 선정하고 장비를 가진 공급사를 찾아 계약하고 이를 활용할 수요자(기업들)를 선정하는 일련의 행정 절차가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이 최소 4개월은 소요된다'는 근거를 들었다. 유사 사업인 '고성능컴퓨팅 지원사업'에서 이미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사례도 덧붙였다.
전국을 샅샅이 뒤져봐도 B200 보유 기업은 달랑 한 곳뿐이다. 지난달 B200을 들여온 애드테크 기업 '파일러'가 유일하다. 정부가 예산을 확보해도 정작 살 물건이 시장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H100 GPU는 국내 보유 기업이 있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B200은 공급사를 찾는 데만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형 챗GPT'를 개발하겠다는 정부는 사전 조사 없이 장밋빛 계획만 추경안에 반영한 셈이 됐다.
정부는 AI를 '국가 핵심 전략 기술'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분석 결과는 사업 추진의 현실성에 의문을 던진다.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책정된 임차 기간과 부족한 장비는 결국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예산은 혈세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써야 하는 건 당연하다. 국내 AI 관련 산업은 해외보다 뒤처져 있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금쪽같은 시간을 허송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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